본 초상화는 신뇨신노우(真如親王)의 진필이고, 한죠오지(飯盛寺)의 절의 보물로서 소중히 대대로 계승되어 왔다.
真如親王은 平域천황의3번째 황태자로, 쿠스코(薬子)의 난(810) 때에 연좌(連座)된 후 空海의 제자가 된 헤이안(平安:794-1192) 초기의 사람이다.
지금도 高野山 御影堂에 남아 있는 대사상(大師像)은, 真如親王이 스승을 찍은 사진이며, 진언종의 8대 선조(인도의 竜猛・竜智・金剛智・不空・善無畏・중국의 일행・恵果・일본의 弘法)로 불리는 개조의 초상화 중에 대사 사진의 원상(原像)으로 되어 있다.
당 절에 대대로 간직되어 온 초상화는 대폭(세로 142cm×가로 125cm)이지만, 상의 얼굴, 마루에 앉은 모습 등 원상(原像)의 옛 양식을 충실히 답습한 가마쿠라(鎌倉:1192-1333)시대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그 묘사도 적확하고 지방에 있어서는 대사의 초상화 중에서 우수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성화상(聖画像)으로서 신앙의 대상인 만큼 부분적인 보수한 흔적도 보여지지만 대체로 보존은 양호하고 관리에 정성을 들인 것이 그리워진다.
당 절의 문헌에 의하면 霊亀시대・養老시대의 개창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후에 後光厳院의 명령과 관련된 칠당 가람 12방의 웅장하고 아름다움이 계속되고, 1484년 3월, 산 하나가 대화재의 비운을 만나고 나서부터 절 운명의 쇠퇴를 말하지만, 더우기 집기(사원 소유의 비품)로서 「대사의 사진 真如親王의 진필」의 계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 대화재에 의한 대사의 사진의 소실에 관해서, 동년 6월 거듭해서 高野山에서 사진을 옮겨서 안치한 사실을 말하는 콘고우부지(金剛峰寺) 南院 長清의 서신으로부터, 본 초상화의 유래가 한층 분명한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