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모리산(飯盛山) 중턱에 자리잡은 한죠오지(飯盛寺)는, 14 세기 중기 고코우곤(後光厳)천황의 명령에 의해 재건된 후, 1484년에
화재를 입고, 1486년에 円満院의 2품 친황(親王)의 재건을 전하지만, 본 당내에 잔존한 다수의 기부 팻말이 같은 해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와, 그 재건의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돌담 기단에 세워진 본당은, 도리 간수 13.66m, 들보 간수12.88m. 단층, 우진각 지붕, 츠마이리(妻入:건물의 측면에 입구를 마련한 건축 양식), 띳장 기와지붕(옛날은 새지붕이고 근대에 개조했다),사방 키리메엔(切目縁:툇마루의 긴 방향에 대해서 직각으로 판자를 깐 툇마루)의 건물(방 다섯개 딸린 건물)이고, 각부의 바탕은 일본풍으로 하고 向拝(신전이나 불당의 정면에, 본체로부터 나와 차양을 마련한 부분)는 후에 설치했다.
이 본당은, 그 축조 연대에 있어서 하가지(羽賀寺) 본당에 이어, 진구우지(神宮寺) 본당에 앞서 본 고장의 중세 건축물의 귀중한 잔존물이고, 또한, 그 평면도 아주 비슷하지만, 앞에서 전술한 양 본당도 내전(内殿)의 안길이가 3.63m이고, 내전(内殿)의 양측면에서 1.81m 들어간 위치에 기둥을 세우는 옛 양식에 대해, 본당에서는 중세말의 일반적인 구가법(構架法)에서 내전 주변의 기둥을 뽑아, 대들보(虹梁:주로 사찰 건축에서 이용되는 약간 활모양으로 젖혀진 대들보) 위에 두공으로 각목을 받쳐 추녀 안의 도리를 지탱하기 위해, 내전(内殿) 안길이가 2.73m라는 차이가 있다. 또, 내전쪽의 삼실은 변하지 않지만, 양 본당의 박공지붕 형식의 평입(平入:건물의 긴쪽에 정면 입구가 있는 것)에 대해, 우진각 지붕 형식의 츠마이리(妻入:건물의 측면에 입구를 마련한 건축 양식)라고 하는 형식과, 기와 재료의 틀림으로 보와 이 당의 외관은 현저하게 작게 보인다. 현재, 일부 건축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의 장치 등에 개조가 보이지만, 기본적인 구성 부재는 그 당시의 것이 잘 남아 있고, 대들보・두공 ・키바나(木鼻:구석이 기둥으로부터 돌출한 부분) 등에 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羽賀寺・神宮寺의 양 본당의 화려함에 대해서, 허식이 없는 이 당의 간소함은, 전국 쟁란기에 있어서의 대시주(大施主)의 부의 차이를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