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시오(大塩) 성터는 口田縄 촌락의 배후를 남북으로 달리는 大光寺山에 있다. 이 산은 해발 134.7m의 작은 산이지만, 南川
계곡의 산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의 요지이고, 산록에는 성주 大塩씨의 조상 위패를 모신 大光寺가 있고, 그 부근에는 관(館)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口名田村誌』는 1465년 와카사(若狭)의 수호직을 지낸 武田씨의 하급관청 大塩吉信의 축성과, 1469년
大光寺의 창건이 기록되어 있지만, 『郡県志』에는 축성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1493년 大塩吉次의 大光寺 건립과 졸업
후의 법호「大光寺」및 몰락한 해를 1504년이라고 전하고 있다.
성의 정면 출입구는 大光寺로부터의 경로로 보여지며, 산정에는 전후2중의 성곽을 흙담으로 둘러싼 총길이는 약 100m, 폭은 약 50m의 주요 성곽 대지가 있고, 그 남쪽 후방에는 크게 동서로 움푹 패인 수로가 있고, 흙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다섯 개에 수로를 구획하는 특이한 장자(障子)형 수로와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지만, 이 예는 관동(関東)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관서(関西) 지역에서는 희기한 옛 건축물로 주목할 만하다. 또 주요 성곽의 북측에도 흙담으로 축성된 2중의 성곽으로 구획한 같은 진용을 갖추고 있고, 옛 건축물의 전체로서도 흙담, 밖으로 내민 성곽, 수로, 수직으로 판 수로 등이 남아 있다.
大塩씨는 대대로 長門守를 칭하고, 『口名田村誌』의 기록에는 吉信, 吉次, 吉忠, 助秀의 4대, 『郡県志』의 기록에는 吉次, 新左衛門尉의 吉忠, 八郎左衛門의 3대로 하지만, 吉次의 법호「大光寺」에 의하면 吉信, 吉次는 동일인이 안일까 라고도 여겨진다.
마지막 성주는 1562년 湯岡 지역의 성주 南部久方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国吉城의 粟屋씨에게 몸을 의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