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戦国時代)의 1522년 와카사(若狭) 지역의 守護職을 지낸 武田元光가, 오바마(小浜) 시가지 남쪽에 우뚝 솟은 万葉의 명산, 노치세산(後瀬山)에 성을 구축했다. 그 후 1573년에는 니와나가히데(丹羽長秀)무장이 입부(入部)했지만, 1601년에 시작된 小浜城의 축성에 따른 폐성이 될 때까지 역대 와카사(若狭) 군주가 머무른 성이였다.
수호관(守護館)은 성의 북쪽 산록(空印寺와 小浜 초등학교의 소재지)에 동서로 110m, 남북으로 120m(수로을 포함)를 차지하고 동쪽・북쪽・서쪽의 세 방면에, 바깥쪽은 지금의 시가지로 이중의 해자로 겹친 견고한 城館이었다고 전한다.
성은 산정(표고 168m)에 주성곽(명칭의 전언은 없음)을, 城館을 둘러싼 각 능선에 성곽군(城郭群)을 배치하고, 거대한 수굴군(竪堀群)과 해자(물결이 있는 수로), 해자(물이 없는 수로)와 흙다리, 능선의 성곽군을 서로 연결하는 옆길이나 성도(城道)가 갖추워 있는 등, 싸움에 만전의 전투태세를 기하는 한편, 연계한 산성은 산맥이 이어지는 先端・湯岡山까지 미치고 있다.
주성곽에 근접하는 서남쪽의 성곽 약 630 ㎡는, 1988년도 발굴 조사의 결과, 재축된 제방과 석가산, 초석(礎石)을 수반한 옛 건축물(약 16m×8m)을 검출, 반출된 찻잔이나 그릇 등도 있어서, 전투보다 절경・달구경이나 문예 등을 즐기는 산정의 저택유적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본 성에서의 전투는 아사쿠라(朝倉) 세력을 요격한 1568년 8월 13일의 전투로, 武田씨가 마지막 성주이고, 元明이 항복, 에치젠(越前)으로 납치된 이래 기록은 없다. 지금 산정에 자리잡은 愛宕신사는1615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그 무렵, 東北山 산록으로부터 지금의 참배길이 생겼다고 보여지지만, 旧城道의 이용은 산정의 일부에 한정된다.
『拾椎雑話』의 제목에 담아있는 後瀬山의 모밀잣밤은, 옛 와카사(若狭)의 명산으로 되었지만, 지금은 모밀잣밤을 줍는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