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을 클릭해로 확대 사진을 표시
|
지 정 |
소재지 |
관리자 |
|
1969.11.21 시 지정 |
小浜市酒井 |
日莲宗長源寺 |
|
이 방울(鰐口:불당이나 신사의 앞 추녀에 걸어 놓는 방울)은, 직경이 28.5cm이고, 두께는 9.5cm이고, 무게는 5kg이며,
동으로 만들어졌고, 「永重本堂円覚寺鰐口延文五年(1360)庚子十一月八日、若州長源寺常住、施入妙是」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크기나 오래됨에
있어서는 현내에서 귀중한 유품이다.
長源寺는 고랴쿠(康暦:1379-1381)시대, 日源고승이 창립하고, 後瀬산록(현 空印寺의 대지)에 창건되었지만 武田元光씨가 後瀬산정에 성을 구축할 때, 저택 건설을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축되었으며, 당시는 그 일대가 늪 지대의 섬이였기 때문에 이축 후의 산 이름을 「向島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이축(移築) 후의 長源寺는 융성을 끝없이 해왔고, 타이쇼(大正) 4년(1915)의 『小浜町誌原稿』에 의하면 「절 경내에 三十番신사가 있고, 서쪽에 절당이 있고, 누각은 죠우쿄우(貞享:1684-1688)시대의 건축으로 좌우에 金剛力士를 두고 누각 위에 十六尊者를 안치한다. 옛날은 절의 경내에 17 승원(僧院)이 있었지만, 지금은 4 승원만을 남기고 집기에 日蓮고승의 대만다라(大曼茶羅)가 있고, 또 설죽의 생황이 있고, 秋風丸라고 이름짓고, 天智천황의 식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견본(絹本)으로 된 화상(画像)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기록에는, 17 승원이 있었으므로, 방울에 기록된 円覚寺는 그 17승원중의 하나이고, 그곳에서부터 본 절에 전해온 걸로 고찰된다. 『若州管内社寺由緒記井社寺什物記』는 長源寺의 창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日源고승은1380년 여름, 본 고장에 와서 여행 도중에, 遠敷지역의 正護비구니를 만나고, 비구니는 홍경제도(弘経済度)의 고승을 만난 원망성취(願望成就)로부터 오바마에 고승을 동반해 고승의 법화경(法華経)을 강의하고. 聴者市를 이루어 모인다. 따라서 一字를 만들어서 長源寺라고 칭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