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지(羽賀寺)에는 칙필의 유서를 비롯한, 수많은 귀중한 고문서를 후세에 전하고 있지만, 이 『羽賀寺의 본당 지붕 권화장 1권』도 역시 그렇다. 이 권화장(세로 32cm, 전체 길이 255cm)은 괘선을 넣은 용지(鳥子紙)를 사용하고 있으며, 권자본(巻子本)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종류로 되어 있으며, 작자는 쇼우렌인(青蓮院:천태종 절)절에 입도한 尊猷 황태자이고, 題答・발문에서도 밝혀진다.
권화장은 「勧進沙門경구」에서 시작하여, 레이키(霊亀) 2년(716), 교우키(行基)보살이 개창한 이래 절 운명의 성쇠를 상술한 후, 분난(文安) 4년(1447) 安倍康季장군이 당(堂)을 준공한 후, 60여년이 지나 낡고 썩어서 못 쓰게 된 본당 지붕을 덮기 위해, 針芥의 시여(施与)를 권진하고, 마지막으로 본존 십일면관음의 공덕을 찬탄 해서 「仍幹縁旨梗概如斯」라고 끝맺고 있으며, 「에이쇼(永正) 11년(1514) 음력 4월 勧進沙門경구」을 문 말에 두고 끝낸다. 이 권진 沙門 尊猷 황태자는 고카시와바라(後柏原)천황의 제3 황태자로 쇼우렌인(青蓮院)의 주지 천태종의 좌주(座主) 四天王寺의 별당을 역임하신 尊鎮法 황태자가, 텐붕(天文) 19년(1550) 9월, 47세로 훙서 (薨逝)하셨다. 따라서 이 권화장은 황태자가 11세 때의 글이 되지만, 서적에는 조금도 서툰 문장이 없고, 무로마치(室町:1336-1573)시대의 일본 풍체로 필력이 늠름하고 힘차며, 기품이 높고 그 유려(流麗)한 서체와 더불어 갑자기 믿기 어려운 구름 위의 교양을 그리워하게 한다.
「紙本墨書 羽賀寺 年中行事」에서 보는 본당 지붕 덮기의 첫 대면은 「텐붕(天文) 원년(1532)이고, 본당 지붕 덮기의 완공은 2월 16일 공양 있고」의 내용이지만, 이 권화장의 명문(銘文)에 의하면 실로 18년의 세월을 소비했다. 우연한 전쟁의 와중에 있어서, 와카사(若狭) 일국 또는 험악한 형세인 것을 생각하면, 이 기간의 길이는 그대로 권진의 고생을 알리는 것이고, 아마 그 사이에, 응급 보수를 해서 비와 이슬에 견뎌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