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석가가 돌아가신 날인 열반회(常落会)에는, 각지에서 열반도를 모신 법요가 엄수 되어 왔다.
열반도는, 석가의 게텐(下天)에서 입멸(入滅)까지의 8상의 사적(事蹟) 안의 열반(입멸)을 주제로 한 화상으로, 성도(成道) 후 45년간의 설법을 끝내고 병을 얻은 석가가, 사라소우쟈(沙羅双樹) 아래에 상좌(침대)를 마련하게 해서, 조용하게 임종때를 맞이할 수 있는 정경을 묘사한다.
본 도면은, 오른손을 베개로 하여 머리 북면서쪽으로 하고, 양 다리를 가지런히 해서 침대에 모로 눕는 석가를 그려내는, 가마쿠라(鎌倉:1192-1333) 시대 이후에 유포하는 제2 형식에 의해 그려진 열반도이다.
이것을 둘러싸고, 석가의 입멸을 냉정하게 지켜보는 보살이나 비탄에 저무는 십대 제자, 금수(禽獣)들 다수를 정밀하게 표현한다.
또, 화면 좌상에 천상으로부터 阿那律에게 이끌려 강하(降下)하는 마야(摩耶) 부인을 그려, 석가의 다리에는 비샤리죠우(毘舎離城)의 노녀가 손을 대고 있다. 회중 안에서도 아난(阿難)이 넘어져 1 비구가 물을 따르는 장면도 유명하고, 沙羅樹의 배후에는 물결 난폭한 희련하가 흘러 군청의 허공에는 만월이 희게 그려내지고 있다.
석가모니는, 금니몸이라고 해서, 의문은 금니채에 키리카네 문양을 다용 한다. 보살은, 흰색고기 육체를 주선으로 유곽 해, 羅漢등 대중은, 고기 육체를 묽은 묵선으로 인연 잡는다. 착의 등의 문양에는, 금니의 성상 채색을 이용하고 교묘하게 표현하는 등, 전체로서 과장의 여 개 없는 온화한 그림같은 풍취에 마무리할 수 있고 있다.
본 도면은, 세로 164.0cm , 가로 118.0cm , 열반도에 대폭이 많은 안, 세 폭 이불의 동양화용 생견을 옆에 쓴 비교적 소형의 화면에 그려져 상기의 특징이나, 전체에 형식화해 표현이 온이나일까하고 되는 것등에서, 남북조 시대의 제작으로 판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