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羽賀寺


천수관음보살입상(千手観音菩薩立像) - 1구(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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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소재지 관리자
1941.11.6 국 지정 小浜市羽賀 高野山真言宗羽賀寺


 하가지(羽賀寺) 본당 내전(内殿) 정면의 수미단(須弥檀)에 십일면 관음 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치되는 것이 천수 관음 보살 입상이다.본상은, 노송재의 요세기즈쿠리(寄木造:부위별로 조각해서 조립한 불상)이고, 목재의 갈라짐을 막기 위해서 내부를 도려냈으므로, 상 무게는 30kg에 지나지 않는다.상고 135.4cm, 채색을 칠하지 않는 素地의 조각으로 여겨진다.
 본존(本尊) 십일면 관음상에 비해, 대단히 온아한 표정이다. 조금 미소를 띄운 것처럼 보이는 이목구비, 동그랗게 소야무진 곳의 얼굴의 모델링, 그다지 기복이 없는 체부의 아우트라인, 좌우 대칭인 치마의 문양, 그 얕은 조각 윤곽, 어느 것도 헤이안(平安:794-1192) 말 보살상의 전형적인 특색이고, 더우기 대좌(台座)도 거의 그 당시의 것을 남기고 있다. 단지 그 蓮弁의 모습은 헤이안 말의 통상의 것인데, 꽂는 방법이 각 판의 사이를 뜸하게 꽂아 나오지 않고, 서로 겹쳐 물고기의 鱗状에 꽂아지는 것은, 헤이안 말부터 가마쿠라(鎌倉:1192-1333) 양식으로의 이행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본상은 그 胎内에 기록된 먹으로 쓰여진 서명에 의해, 쵸칸(長寛) 3년(1165) 천상에 있던 쇼우린지(松林寺)의 본존으로서 상이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고, 또 胎内 납입의 목찰의 먹명으로부터 만지(万治) 3년(1660)의 수복과, 그 양쪽 협사(脇士) 보살인 부동 명왕(明通寺), 毘沙門天 (羽賀寺), 화상(画像)의 와력이 분명해졌다. 덧붙여 松林寺는 메이지(明治:1868-1912) 초기에 퇴전 해, 삼존(三尊)은 羽賀寺에 옮겨졌다.
본상을, 묘우라쿠지(妙楽寺) 본존 천수 관음에 비하면, 옆구리 손 수는 적다. 그리고 다수가 파손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쇼와(昭和) 25년(1950)의 수리에 즈음해서는, 옆구리 손을 新補하는 것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