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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인


아베(安倍) 일가 문서 - 6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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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소재지 관리자
1982.4.20 시 지정 小浜市志積 개인


 아베(安倍) 집은 오바마시(小浜市) 志積(원래 내외 해안 마을에 속한 어촌)에 있어, 가마쿠라(鎌倉:1192-1333) 초기 이래 이 포의 刀祢職을 계승해, 근세에는 촌장을 근무한 전통 있는 옛집이다. 아베 문서는 카마쿠라 초기보다 메이지(明治:1868-1912) 중기에 미치는 어촌, 어업후미, 더욱은 일본해의 교역 경제 발달후미의 연구상, 근년 나라 지정이 된 하다 문서와 줄서 귀중한 가치를 가지는 자료이다.
 헤이안쵸(平安朝:794-1192) 초기에는 이미 개발되어陽成院領이 되고 있던志積浦가 그 후 천태종의座主良源의 영지가 되어, 이래 이 포의 산문과의 관련이 깊어졌다. 이러한 문서가 아배씨에게 전존하는 것은, 동씨가 志積刀祢으로서 시ㅂ 선사, 客人社의 제례료논을 관리해, 제례에 봉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관계상, 대 들에게 전할 수 있던 것이다.
 카마쿠라기에 시츠미포거주자들이 일본해 연안의 운송선업을 주된 생업으로 하고 있던 사실을 실증 하는 귀중한 자료도 있어, 副進문서 목록에, 西山宮御代御免除状案、座主宮令旨案、青蓮院令旨案等々 등이 열기되어 있으므로, 이 운송선이 산문이나 蓮院의 보호를 받고 징수한 관세등을 면제된 일이 추정되지만, 이 때는 越前国 阿須和(足羽) 진구우지(神宮寺)의 越後房이 미쿠니(三国)에 있어 선중 적하의 쌀 6말을 눌러 그 특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운송 선인들이 子細를 호소한 사정을 안다.
 근세 문서에서는 쿠니토미(国富)의奈胡・熊野의 양 마을이 다년에 걸쳐「보관료」를 지불해 志積浦持山의 일부를 빌리고 있던 사실, 刀祢家가 대 대로 상전의 망장을 가진 사실, 또 근린포들과의 사이에 어장 쟁론이 생기기 쉬웠던 사정 등이 주목된다.
 텐보우(天保) 15년(1844) 포에 고래가 표류했다는 등, 메이지(明治:1868-1912)기에 있어서의 장그물 어업의 망장과 그 소유자를 다 쓴 기록도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