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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保区


新保산성(霞美ヶ城)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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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소재지 관리자
1988.1.21 시 지정 小浜市新保・大谷 新保・大谷


 풍요로운 자연에 혜택받은 이곳 미야카와(宮川) 산골짜기의 거의 중앙에 위치한, 신보(新保) 촌락의 뒷산에 구축한 新保산성(霞美ヶ城)은, 수호직을 담당하고 있는 타케다(武田)씨에 의해 노치세(後瀬) 산성 다음가는 규모를 가지며, 특히 산성・저택・암자와 일련의 유구(遺構)을 남기는 귀중한 유적이다.
 축성된 초기 원형은 확실하지 않지만, 성의 존재가 확실한 것은 수호직을 지낸 武田元光의 아이로, 守護職을 승계한 武田信豊의 남동생에 해당되며, 宮川영주님으로 불린 宮内少輔信高이고, 텐붕(天文) 10년(1541)에 산록에 류우센지(龍泉寺)를 창건 했다고 전한다. 이 信高는 코우지(弘治) 2년(1556) 36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하고, 그의 후임직은 信豊의 자식 彦五郎信方씨가 이어 받고, 뛰어난 무장・봉행인(奉行人)으로서 활약했지만, 성곽 구축의 정비도 아마 信方씨가 성에서 거주했던 에이로쿠(永禄:1558-1569)시대라고 추정된다.
 성은 거의 남북으로 꾸불꾸불한 능선의 최고부(293.6m) 부근의 결전 거점이 되는 주 성곽군과 여기에 이어지는 능선 주요부를 조밀한 성곽군으로 방어하는 한편, 주 성곽인 서북쪽의 오오타니구(大谷区)를 향한 枝峯의 능선, 또한 동남쪽의 신보구(新保区)로 하강하는 능선에도 각각 대소의 성곽군을 배치하지만, 주 능선의 남단에는 지성(支城:본 성을 보조하기 위해서 배치된 성)으로서 독립한 성곽군이 존재한다.
 이러한 각 성곽군에는 최대폭 13m, 깊이 10m에 이르는 장대한 해자(수로) 군을 비롯해서, 타떼보리(竪堀:산성에서, 자연 지형의 경사면에 상하 방향으로 마련한 해자)수굴, 오비구루와(帯郭:성체 둘레에 흙이나 돌로 울타리를 쳐 놓은 지역), 코시구루와(腰郭:산성 등에서 경사면의 산 중턱에 마련한 곡륜), 요새, 망루대나 성의길 등을 교묘하게 배치해서 공방 양면의 전투에 대비했다. 단지 전투 기록은 없다.
 이 武田信方은 세이와 겐지(清和源)씨의 혈맥 상통한 귀인의 혈통으로서, 당시 와카사의 반대 세력 오다(織田) 세력을 결집하여, 맹주로서 싸웠지만, 텐쇼(天正) 원년(1573) 8월 아사쿠라(朝倉)가 멸망한 후는 備後(広島県 동부)에서 은퇴하고, 텐쇼(天正) 13년(1585)경에 몰락했다고 여겨지지만, 霞美ヶ성도 그 당시 파각(破却)의 운명을 더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