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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泉寺


武田信方의 초상화 - 1폭(견본・착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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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소재지 관리자
2004.1.23 현 지정 小浜市新保 曹洞宗龍泉寺


 彦五郎信方은 와카사(若狭) 수호 武田信豊의 아이로, 信高 서거에 의해 그 자취직을 이어받았다고 생각되며, 信高의 다음 해, 코우지(弘治) 3년(1557) 부의묘 츠지(明通寺) 문서에 그 이름이 보인다.
 그의 법명은 찬에 帰雲寺전 前金吾菊潭宗英大居士라고 적혀 있고, 향년(享年)은 류우센지(龍泉寺)에 소장된 과거장(過去帳)에 텐쇼(天正) 13년(1585)으로 되어 있고, 불국사(仏国寺) 本武田 계도의 텐쇼(天正) 14년(1586)이라고도 한다.
 信方의 발급 문서는 다수 남아 있고, 아버지 信豊와 관련된 형님 義統이나 그 아들 元明 무렵에는 상당한 세력을 얻어 군사력도 있었 보였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전국시대의 장군)의 와카사(若狭) 진격 시에는 에치젠(越前) 아사쿠라(朝倉)씨에 대해서도 있다. 이와 같이 信方은 戦国시대 말기의 동란 중에서 세이와 겐지(清和源氏)의 피를 끄는 타케다(武田)씨의 후예로서 마지막까지 저항을 시도해 보지만,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것 같다.
 화상(画像)의 信方은 에보시(烏帽子:무사가 쓰던 흑색 모자), 스오우(素襖:마포에 가문을 넣은 의복)에 창칼을 메고,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상좌에 앉은 모습이 그려진다. 얼굴은 아무래도 명문의 가계로 태어나면서 격동의 시대에 사는 늠름한 모습이고, 찬문에 있는 대로 상당한 인격을 갖춘 무장이었다고 생각된다.
 찬은 信方役의 19년 후인 게이쵸(慶長) 8년(1603)에 이전의 南禅寺 주지였던 모린겐토우(茂林幻桃)에 의해 쓰여지고 있으며, 에이호 요우유우(英甫永雄)는 전년에 돌아가셨지만, 幻桃도 와카사 武田씨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본 도면의 치수는 세로 82.7cm, 가로 34.9cm로 信高 화상과는 분명히 다른 그린 방법을 하고 있지만, 信高 화상과 文政禅師頂相図을 생각하면 信方의 생존중의 초상이라고 여겨지며, 파란 많은 생애를 상상 시키는 무장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