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사(若狭) 코쿠분지(国分寺)의 본당 왼쪽에 야쿠시도우(薬師堂)가 있고, 당내 수미단(須弥檀)에 안치되는 본존, 중요 문화재,
목조 야쿠시(薬師) 여래 좌상의 양측을 향해 왼쪽에 석가 여래 좌상 1구가, 오른쪽에 아미타 여래 좌상 1구가 마치 협사(脇士)
보살 처럼 봉안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 薬師 脇士는 일광(日光)・월광(月光)이며, 석가는 문수(文殊)・보현(普賢)이고, 아미타는 관음•세지(勢至)의 각 보살을 협사(脇士)로 하고, 여래상(如来像)을 함께 모시는 예는 없다. 아마 전폐한 승방의 주존을 이유가 있어서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노송재의 요세기즈쿠리(寄木作:머리,몸통,손발등을 별도로 만들어서 조립한 불상) 이며, 온아하고 균형이 잡힌 원만한 불상의 얼굴, 정체가 없는 자연스러운 옷 무늬의 조각 법 등으로 보와, 모두 헤이안(平安:894-1185, 미술사의 시대구분의 하나)시대 말기의 영향을 받은 가마쿠라(鎌倉:1192-1333) 전기의 제작으로 추정 할 수 있다. 단 옻나무 칠 및 후광(後光), 대좌(台座)는 모두 후에 보강되었다.
석가 여래 좌상은, 상 높이가 85.7cm이며, 설법을 결인하고, 태내(胎内)에 「1693년 음력 11월 8일, 当村居関喜太夫、再興施主当寺中興月船玄桂、当村与左右門、久右門、若劦国分村尼寺庵主霊鏡玄心代」라고 붉은 글씨의 수리명이 있고, 또한 등받이 뒷면에는 여섯 구의 부처가 먹으로 그려져 있다.
기록되는 명문으로 보와 겐로쿠(元禄) 6년(1693) 독실한 신자에 의해 수리된 것을 알림과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세대에 걸쳐서 비원(悲願)을 부탁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지금의 심정을 그리워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