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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分寺


석가여래좌상(釈迦坐像坐像) - 1구(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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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소재지 관리자
1970.2.20 시 지정 小浜市国分 曹洞宗国分寺


 흉작과 전염병으로부터 만민을 구제한다는 쇼우무(聖武) 천황의 발원에 의해, 텐뵤우(天平) 9년(737)에는 각 지방에 16척(尺) 석가상 1구(軀) , 협사(脇士) 2구, 대반야경(大般若経) 각 1부의 사경(写経)을 명하였고, 740년에는 7중탑 1기, 7척 관음상 1구 의 조립과 법화경 10부, 관음경 10권의 사본을 명하였으며, 741년에는 코쿠분지(国分寺)를 2절로 나누어서, 승려절을 「金光明四天王護国之寺」, 여승방을 「法華滅罪之寺」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지지만, 이곳 코쿠분(国分) 마을은, 일찌기 텐뵤우(天平:729-749)시대의 장엄한 미를 나타낸 와카사(若狭) 国分寺의 유적이다.
 세월이 지나 1200 년 남짓, 天平 시대에 창건한 칠당가람(七堂伽羅)은 각 지방에 있는 国分寺의 예에서 빠짐없이, 소실, 파괴 등의 재난을 거듭해, 무로마치(室町:1336-1573) 시대 말무렵에 이르러서는 가마쿠라(鎌倉:1192-1333) 시대의 것을 재차 새로 조각한 본존 대불을 남길 뿐이지만,게이쵸(慶長) 16년(1611) 오하마(小浜) 거주자, 야마다1덕(山田一徳)가 각 지방의 원근(遠近)을 권진해서, 현재의 석가당을 건립했지만, 그 후 큰 파괴를 입어, 호우에이(宝永:1704-1710)기에 재건되었다.
 본존 석가16척의 대불은, 상 높이가 318cm, 무릎 폭이 237cm, 요세기즈쿠리(寄木作:머리,몸통,손발등을 별도로 만들어서 조립한 불상), 시무외(施無畏), 소원의 표시를 연결하고, 天平시대의 옛 제도를 지금에도 전하는 현내(県内) 최대의 거상이며, 기단 위에 세워진 팔작집 지붕의 건축 양식에 히라이리(平入:건물의 측면이 아닌 긴면쪽에 정면입구를 설치한 건축 양식)의 석가당 내에 안치 되어 있다.
 본상의 몸체 부분은 가마쿠라 시대, 머리 부분은 에도(江戸:1603-1867)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특히 몸체 부분은 사실적(写実的)인 도법(刀法)을 사용해서 훌륭하게 조형되었다. 육신부에 잔존하는 옻나무칠이나 의복의 채색과 함께 지난 날의 화려함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 있다.
 고향의 코쿠분구(国分区)에는, 몇개의 문화재 애호 소년단이 있어 문화재 애호의 실천과 연수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