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은 나라(奈良:710-784) 시대의 초기, 겐메이(元明) 천황의 연호인 와도우(和銅) 7년(714)에 타이쵸(泰澄) 대사의 제자 활원(滑元)이 창건하여, 그 다음 해에 임금의 기원소(사찰)가 되어 신원사(神願寺)라고 일컫었다. 멀지 않아 흰돌 가마우지의 여울에서, 오뉴우(遠敷) 신사을 청한 관계가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헤이안(平安:794-1192) 시대에 간무(桓武) 천황, 시라카와(白河) 천황의 칙명(勅命)에 의해 가람이 재건되었다고 한다. 가마쿠라(鎌倉:1192-1333) 시대에는 장군 뢰경(頼経)은 칠당(七堂) 가람(일곱 건물을 갖춘 절) 25개의 방을 기부해, 와카사이치노미야(若狭一の宮)의 별당 절이 되었고, 절 이름을 네모토진구우지(根本神宮寺)로 고쳤다. 무로마치(室町:1336-1573) 초기에 호소카와 기요우지(細川清)씨의 부흥이 있어서, 현재의 본당은 텐분(天文) 22년(1553) 에치젠(越前)을 지킨 아사쿠라 요시카게가(朝倉義景)씨가 부흥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니오우몬(仁王門), 본당, 개조당(開祖堂), 엔조우방(円蔵坊), 사쿠라모토방(桜本坊)이 남아 있을 뿐, 본당은, 쇼와(昭和) 30년(1955)에 해체 수리를 끝내서 지금의 위용(偉容)을 보는 것이다.
본당은 5간 6간의 건물이다. 즉 도리가 5간에 대들보가6간이어서, 정면폭 14.34m, 안길이 16.60m의 단층 팔작집 지붕, 히와다브키(桧皮葺:노송나무 껍질로 인 지붕)로, 돌 기단(基壇) 위에 서서, 사면에 툇마루를 마련하여 그곳에 난간을 두르고 있다.
굵은 원기둥 위에 일본 양식으로 두공(斗拱)을 이용해, 쟈바라시린(蛇腹支輪:실내의 벽에 수평으로 두른 띠 모양으로 장식한 돌출부를 지탱하는 竪木)을 갖추고, 나카조나에(中備:처마 주위의 기둥과 기둥 사이 상부에 놓여지는 것.)에는 정면에 정교한 카에루마타(蟇股:개구리 가랑이를 넓힌 모양, 고건축에 이용되는 들보 위의 조각물)를 두고, 정면5간은 모두 절상 덧문을 세워, 서까래를 가지고 덮은 본당은, 중세 말기의 건축으로서 당당한 풍채로 군림하는 것 같다. 일본 양식을 주체로 하고 있지만, 여러 곳에 대륙 양식을 도입하여, 키바나(木鼻:구석이 기둥으로부터 돌출한 부분)에 인도 양식의 쿠리카타(繰形:건구 등에 장식적으로 이용되는 돌출부)을 이용해, 내부의 묶은 들보는 모두 중국 당시대의 양식이 많고, 츠마카자리(妻飾:뱃집 지붕이나 팔작집 지붕에서 박공 부분의 장식)도 처마 모퉁이의 반전과 함께 화려한 모습을 한층 북돋으고 있는 것 같다.